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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바람처럼, 구름처럼… 이세돌은 반상의 풍운아였다
작성자:한창규, 2019-11-20 07:2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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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년 4개월간 활동했던 프로기사 생활을 마감한 이세돌 9단. 전 세계 바둑팬들에게 깊이 각인된 그인 반상의 풍운아였고 시대의 승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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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이세돌의 바둑 인생 25년
알파고를 이긴 인류 유일의 기사


25년을 몸담았던 (재)한국기원에 19일 사직서를 낸 이세돌은 1983년 3월 2일 외딴섬 비금도에서 태어났다. 목포에서 바닷길로 40킬로미터쯤 가야 나오는 전남 신안군의 1,000여개 섬 가운데 하나가 이세돌의 고향이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 어머니는 농삿일도 하는 주부. 이세돌은 3남2녀의 막내다.

아버지로부터 만 5살 때 바둑의 첫걸음을 배운 이세돌은 아들의 재주를 눈여겨본 아버지 권유로 유학길에 올랐다. 8살 위의 형(이상훈 9단)은 일찍이 프로 입단해 있었다. 프로기사의 꿈을 안은 8살 끝 무렵의 꼬마를 태운 서울행 기차는 천리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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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7세 때의 이세돌 어린이(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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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사관학교'로 불리던 권갑용도장에서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은 이세돌은 1995년 7월 프로에 입문했다. 12세 4개월 입단이었다. 조훈현(9세 7개월), 이창호(11세)에 이어 당시로는 국내 최연소 3위였다(현재 5위). 입단동기는 조한승 9단.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두각을 나타내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선에서 5연승을 몰아치며 1년 4개월 만에 종합기전 본선(2기 테크론배) 문턱을 넘었다. 시작에 불과했다. 5개월 후에는 7연승으로 세계대회(2회 LG배) 본선에 이름을 올렸다. 광속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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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프로의 길로 들어선 입단동기는 조한승 9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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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타이틀은 입단 5년 만인 2000년에 찾아왔다. 11연승으로 차지한 제5기 천원전 우승이었다. 그보다 조금 앞서 32연승을 폭풍질주했다. '불패소년' 별명은 그때 얻었다.

2001년 제5회 LG배 결승에서 이창호 9단에게 2승 후 3연패로 분루를 삼켰던 '소년' 이세돌은 이듬해인 2002년 제15회 후지쯔배를 첫 세계대회 우승으로 장식했다. 3단 우승은 세계대회 최저단 우승, 19세 5개월 우승은 역대 최연소 8위 우승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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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일본기원에서 열린 2002년 제15회 후지쯔배에서 세계대회 첫 우승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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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2003년에는 이창호 9단에게 3-1로 설욕하며 제7회 LG배 정상에 섰다. 큰 승부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 이세돌은 2005년까지 여섯 차례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려 네 차례 우승했던 국내 종합기전 우승을 상회했다.

승승장구하던 이세돌은 2009년에 휴직계를 낸다. 6월 30일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상적인 프로기사 활동이 너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휴직계를 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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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이세돌. 1995년 프로 입단해 2003년 최고단인 '입신'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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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앞서 한국기원, 기사회와 마찰 등의 이유를 들어 2019 한국바둑리그 불참을 선언했고 프로기사총회는 이세돌 안건을 다뤄 '조치가 필요하다'는 징계안을 결의했었다. 양측은 한동안 대치 국면을 보여왔다.

한국바둑리그 불참, 기보저작권 사인 문제 등으로 촉발된 기사총회의 징계 논의, 휴직 선언, 복직원 제출과 승인 등으로 이어지며 뜨거운 이슈가 된 '이세돌 사태'는 당초 예정했던 1년 6개월의 휴직기간보다 훨씬 짧은 6개월 만의 복귀로 일단락됐다. 그 과정에서 일명 '이세돌법'이 생겨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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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단이던 1999년에는 실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면서 승단대회를 보이콧, 새 승단제도를 도입시킨 것도 이세돌 9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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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하자마자 질주했다. 굶주린 맹수가 포효하듯 24연승을 달렸다. 24연승 안에는 8연승으로 거머쥔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우승이 들어 있다. 변함없이 강했다.

2014년에는 동갑내기 라이벌 구리 9단과의 10번기로 주목을 받았다. 바둑사에서 70년 만에 부활한 10번기였다. 상금은 우승자 독식 방식. 승자는 500만위안(당시 환율로 약 8억3000만원)을 받지만 패자에게는 여비조로 20만위안만이 지급되는 생존을 건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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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번기'를 벌일 당시 구리 9단과 함께. 라이벌의 은퇴 소식을 접한 구리 9단은 자신의 SNS에 "지금은 그를 꼭 안아주고 싶을 뿐, 할 말은 수천 수만 가지인데 이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까"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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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1ㆍ2ㆍ5ㆍ6ㆍ7ㆍ8국을 제압한 이세돌 9단의 6승2패. 혼을 담는 열 번의 지독한 승부는 이세돌 9단이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하면서 8번기로 끝났다.

2016년에는 바둑사의 위대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생 승부'를 벌인다. 전 세계가 주목한 알파고와의 다섯 차례 승부. 1승4패로 졌지만 네 번째 판에서 보여준 '78수'는 '신의 한수'로 기억되며 알파고를 이긴 인류 유일의 기사가 됐다. 알파고로부터 시작된 AI바둑은 그 후 강자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5000년을 이어온 바둑판의 질서와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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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의 응원을 받으며 알파고와의 승부를 위해 대국장으로 입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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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을 찌르는 수읽기와 현란한 행마. 흔들기와 난전의 대가. 이세돌의 바둑은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쎈돌'이라는 별명만큼 강렬한 모습으로 종횡무진 반상을 누비면서 총 50차례 우승(국제대회 18회, 국내대회 32회)을 이룬 이세돌 9단은 기억에 남을 어록으로도 유명했다.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이다." 알파고에 맞서 0-3으로 패배가 확정된 후 기자회견장에서 한 대표적인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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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차례 우승을 이뤘고 한국기원 집계 98여억원의 상금 수입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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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에 동조할 수 없다"며 기사회에서 탈퇴하고 바둑계의 기성질서에 도전하며 반상에서도 반외에서도 숱한 화제를 뿌렸던 이세돌 9단. 사반세기 동안 몸담았던 '바둑인생의 고향'과의 갈등을 끝내 풀지 못한 채 마흔이 안 된 '풍운의 승부사'는 조용히 돌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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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인생을 향한 다음 행마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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