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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리그] 국내 최초로 '장생' 출현
작성자:한창규, 2013-06-29 22:3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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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한-안성준의 바둑리그 대국서 진기한 '장생' 출현
기보로 남은 국내 공식기전 최초의 등장으로 화제만발


길운 징조일까. 기전의 대서사시로 불리는 KB리그에 역사적인 형태인 '장생'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장생(長生)은 똑같은 모양을 되풀이하게 됨으로써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영원히 승부를 낼 수 없는 형태. 프로들 사이에서도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은 아주 희귀한 모양이다.

이 진기한 모양은 29일 저녁 바둑TV 스튜디오에서 SK에너지와 정관장이 맞붙은 2013 KB국민은행 바둑리그 5라운드 4경기의 제1국, 최철한-안성준의 판에서 등장했다. 바둑리그 10년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 예기치 않은 장생의 출현에 두 대국자가 멋쩍어하고 있다. 서 있는 사람은 강훈 심판위원. [바둑TV 화면 캡쳐]

아래의 그림이 그 장면으로 백이 최철한, 흑이 안성준이다. 최철한이 패에 걸려 있는 대마를 1로 살렸을 때 안성준의 2는 당연. 판을 주시하던 최철한은 여기서 백3으로 붙였다. 귀의 흑이 괜찮느냐는 것. 계속해서 흑4, 백5가 놓이면 이하는 필연 수순(최철한은 백5를 두기 전에 남은 초읽기 개수를 확인하면서 잠시 생각했다).

백11 때 12의 곳을 백이 두면 오궁도화로 잡히므로 흑12로 집어넣는 것이 요령. 이어서 백이 10의 오른쪽을 따내고 흑이 10의 곳을 되따냈다. 계속해서 백이 다시 11의 곳을 먹여치고 흑은 12로 집어넣어 동형반복의 연속.


"반상의 우담바라"

같은 모양이 두어 번 반복되자 두 대국자는 '이거 어떻게 합니까?' 하는 표정으로 심판위원을 쳐다보았다. 마침 올해부터 심판제를 시행하고 있는 바둑리그는 즉각 강훈 심판위원이 '재대국 없는 무승부'를 선언했다(바둑리그 대국규정엔 '무승부시 재대국을 하지 않으며 팀ㆍ개인전적에 0.5승으로 간주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최철한은 도중 선택권을 갖고 있었으나 장생을 '결행'했다. 이에 대해 "처음엔 장생이라 생각지 않고 불리하지만 끊어잡고 두어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며 "귀에 붙일 때도 뭔가 수가 나는 게 아닌가 했지 그때까지는 장생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 역사적인 장생에 두 기사는 기뻐하면서도 최철한은 아쉬움을 나타냈고 안성준은 만족감을 비쳤다. 두 기사의 이름은 바둑사에 길이 남게 됐다.

혹시 재대국으로 생각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처음 나와서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기도 했고, 초읽기를 부르기도 해서 무승부로 해야 하는지 망설이긴 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장생 출현에 대한 두 기사의 소감도 들어 보았다. 최철한은 "장생이 나온 것 자체는 기분 좋고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바둑이 아닌가 싶은데 아무래도 팀전이다 보니 주장으로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는데 그런 점은 아쉽다"고 했다. 안성준은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기치 않은 장생 출현으로 바둑은 불과 40분, 89수 만에 종국됐다. 시즌 최단시간이고 최단수수이다. 두 판을 둔 이날 대국은 2국에서 한태희가 홍성지를 꺾은 SK에너지가 1승1무로 정관장에 앞선 가운데 내일 저녁 팀승부를 결정짓는 3~5국을 속행한다.



장생, 3패, 4패의 기록

공식대회에서 장생은 1993년 2월 제49기 일본 본인방전 본선리그 린하이펑-고마쓰 히데키의 대국에서 처음 나왔으며, 2009년 왕밍완-우치다 슈헤이의 후지쯔배 일본 예선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이번 바둑리그의 장생은 국내 최초의 기록이다.

3패빅이나 4패빅, 장생은 바둑을 두면서 일생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형태. 그래서 이러한 형태가 등장하면 상서로운 징조로 여긴다. 특히 장생은 발생 빈도가 아주 드물다. 살아있는 기성으로 추앙받는 우칭위안은 "장생은 백만 판을 두어도 한 번 생긴 일이 없다. 만일 생긴다면 경사스러운 일이므로 팥밥을 지어 축하해야 한다"고 회고록에서 말하고 있다.

이날 대국을 해설한 조훈현 9단도 "50년 바둑을 두었지만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며 "3패빅이나 4패빅은 수천 판에 한 번꼴로 나온다지만 장생은 그보다 훨씬 드물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최철한과 안성준 역시 "실전에서도 없었고 연습바둑에서도 없었다"고 했다.

한편 4패빅은 지난해 삼성화재배 이세돌-구리의 32강전에서 등장해 무승부로 처리되며 재대국을 벌인 바 있으며, 2005년 이창호-창하오의 남방장성배에서도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또 3패빅은 2010년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이원도-린수양), 2009년 GS칼텍스배 예선결승(허영호-김형우), 2006년 삼성화재배 통합예선(강동윤-장주주)에서 나왔으며, 1978년 승단대회(장두진-한철균)에서도 3패빅으로 이목을 끌었다. 일본에선1998년 명인전(조치훈-왕리청)에서 도전7번기 사상 처음으로 3패빅이 생기기도 했다.


장생을 피할수도...

사실 장생을 피하는 길이 안성준에게도 있었다. 아래 그림 백1 때 흑2로 눈을 내는 수가 바로 그것이다. 백은 3으로 몰게 되는데 흑4로 하나 끊어두고 6으로 잇는다. 4로 끊어둔 효과는 흑10 때 백이 8의 두칸 오른쪽에서 곧바로 단수를 치지 못하는 데 있다. 백이 4의 한점을 따내면 흑이 9의 왼쪽에 집어넣어 빅이 된다.

흑4가 자체로 악수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형세가 유리한 흑으로선 두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안성준은 실전 당시 이러한 수단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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