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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쯔배] 후지쯔배 '애가(哀歌)'
작성자:한창규, 2011-12-22 13:3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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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원, 후지쯔배 중단에 관한 공문 한국기원에 보내와
1988년 창설한 최초ㆍ최고(最古)의 세계대회 역사속으로


세밑에 날아든 비보 하나가 바둑계를 슬프게 한다. 일본기원이 후지쯔배를 중단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오다케 히데오 이사장 명의로 19일 한국기원에 보내 왔다.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는 1988년 창설한 '세계'라는 이름이 붙은 바둑대회의 '원조'이다. 후지쯔배가 효시가 되어 응씨배ㆍ동양증권배ㆍLG배ㆍ삼성화재배ㆍ춘란배ㆍ도요타덴소배ㆍ비씨카드배 등 바둑의 세계대회 탄생에 불을 지폈다. 그동안 치러졌거나 현재 치르지고 있는 세계대회는 10개에 이르며 횟수는 100회를 넘는다.


▲ 지난 1988년 창설된 최초의 바둑 세계대회인 후지쯔배가 올 8월에 치른 24회 대회를 끝으로 중단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사진은 1회 대회 전야제 모습.

그중 응씨배ㆍ삼성화재배ㆍLG배ㆍTV바둑아시아선수권 등은 15년 이상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 밖에도 농심배ㆍ정관장배를 비롯한 단체전과 흥창배, 궁륭산배 등의 여자대회까지 합하면 그 수는 20개가 넘는다.

24년의 세월 속에 최고(最古) 역사를 쌓아온 후지쯔배의 출범 배경은 곱지만은 않았다. 대만의 응창기교육기금에서 응씨배를 창설한다는 소식을 접한 일본이 서둘러 '1호 세계대회'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첫째'(最高가 아닌 最古)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라 해도 바둑에 대한 애착 또한 그만큼 강했기에 가능했다.

후지쯔배는 특히 한국기사와 인연이 많은 '친한(親韓)' 기전이었다. 초창기 5회까지는 일본기사들이 우승컵을 독차지했으나 6회 때 유창혁을 신호탄으로 24회 때 박정환까지 무려 15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도중 11회부터 20회까지는 10연속 금자탑을 쌓았다.

한국기사 간의 결승전도 7차례나 벌어졌다. 또 박영훈ㆍ최철한ㆍ박정상은 우승 내지 준우승으로 병역특례를 받기도 했다. 그러니 기전 중단은 한국기사들에겐 더 씁쓸하게 들려온다.


▲ 후지쯔배 하면 떠오르는 것이 대회 때마다 함께 행하는 공개해설회 모습이다. 일본선수들의 성적은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해도 일본팬들의 관심은 항상 높다.

일본 주최의 메이저 세계대회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더욱 가슴 저미게 한다. 후지쯔배는 한국과 중국서도 개최하는 등 열성적 행보를 보여 왔다. 4월 개막, 6월 2차전, 7월 결승전으로 못박은 일정은 바둑대회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다. 대회 때마다 공개해설회 좌석을 꽉 메운 일본팬들의 열정 어린 모습도 눈에 선하다.

기전 중단 이유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은 아직 없다. 짐작컨대 모기업의 경영 악화가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일본선수들의 성적 부진도 이유가 될 것이다. 후지쯔배 중단 우려는 예전에도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00만엔이었던 우승 상금을 1500만엔으로 줄이는 등 기전 규모를 축소하는 고육책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또 올해는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일정을 연기하고 장소를 오사카로 변경하면서까지 개최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비용 절감 차원에서 자국 예선전을 없애고, 종전 1~3차전으로 나눠 개최했던 것을 한꺼번에 치르는 시스템 변경으로 명맥 잇기에 노력해 왔다.

일본 주최의 세계대회는 2009년 도요타덴소배가 4회 대회를 끝으로 중단된 데 이어 후지쯔배마저 사라짐으로써 한중일 TV속기전 우승자 간의 경연장인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하나만 남게 됐다. 다른 세계대회가 창설된다는 이야기가 잠시 나온 적 있으나 현재는 깜깜 무소식이다.


▲ 1회 대회의 다케미야 마사키로부터 24회 대회의 박정환까지 24년간 총 16명의 우승자를 배출됐다. 지난 8월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한국의 박정환 9단이 후지쯔배의 특색이기도 한 우승 항아리를 받고 있다.

일본기원은 지난해 기한이 만기되는 공익법인단체의 지위를 재보장받기 위해 매진해 왔고 결국 결실을 거뒀지만 후지쯔배 중단은 막지 못했다(공익법인단체로 인정받으면 세금 혜택 등을 누린다). 현대바둑의 최일선에서 바둑문화를 선도해 왔던 일본바둑의 자존심은 최고 전통의 후지쯔배 중단과 함께 실추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세계대회에서의 잇단 참패로 추락 속도가 높아지고 있고, 그에 따른 폐쇄적인 선수 선발방식 등을 두고 여론의 회초리가 강해지고 있는 마당에 일본바둑계의 본산 일본기원으로 향하는 화살은 그 세기가 세질 듯하다.

아울러 여성바둑인구 증가 등의 보도를 자주 내보내며 호의적이었던 매스컴들이 등돌리지 않을까도 염려된다. 아무튼 미국서 프로제를 시행하겠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중국은 우승상금 5억원 정도의 대형 기전을 창설하겠다는 소식도 피어오르는 등 풍성한 화제와 행사로 축제 분위기인 바둑계에 후지쯔배 중단 소식은 몹시 안타깝다.

일본바둑의 퇴보는 한국과 중국, 나아가 세계바둑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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